취재를 위해 거리로 나가면 보이는 간판엔 체감상 한글이 반, 영문이 반이다.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이 과하지 않나, 싶음과 동시에 연출 레퍼런스가 무궁무진한 영문의 매력을 외면하기도 어려운 일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도 꼭 영문이어야 했을까? 자리에 서서 가만히 뜯어보면 이게 가장 나은 선택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는 요소가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담아보았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매력적인 영문 간판.
글·사진 황예하 기자
▲ 분위기까지 면적에 따져 넣자면 성수동 골목 안에서 남부럽지 않은 크기라 꼽을 수도 있을 사인. 오래되어 군데군데 깨지고 정체불명의 칠이 튄 적벽돌 입면 위에 올려진 글자 조각들이 인더스트리얼 특유의 빈티지한 감성을 뽐낸다. 차량번호판에서 잘라낸 듯한 알파벳의 조합이 특히 재치 있다.
▲ 갓 구운 빵처럼 꾹 눌러보고 싶은 ‘슬로우타코’의 하야말끔한 간판. 타코를 연상시키는 노란 반원 위 하얀 입체문자사인은 타코의 속 재료, 마요네즈를 닮았다. 직관적이면서도 ‘O’를 변형한 디자인 요소 부각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 ‘비라티오 커피’의 입체문자사인은 간결하지만 특색이 살아있다. 단순한 디자인으로 가독성이 높은 산세리프 서체를 크게 적용하고 둥글게 굴린 머리글자로 포인트를 주었다. 흰 글자는 벽면에서 띄워 그림자가 지도록 해 존재감을 키우고, 검은 글자는 입체감이 살아나는 두께로 익스테리어에 바로 부착했다. 간결한 글자에 깊이를 더한 고민이 인상적이다.
▲ 각각 아트네온, LED네온으로 제작한 사인들. 창문 앞에 딱 붙어 아기자기함을 배가하는 두 간판을 가만히 뜯어볼수록 흥미로운 차이가 눈에 띈다. 마침 동일한 두 사인의 머리글자 디자인부터 소재가 가진 특성까지. 닮은 듯 다른 매력이 있는 두 간판이 각자 동글동글 부드러움이 필요한 빵집 사인으로, 스포티한 마무리가 중요한 의류매장 사인으로 제격이다.
▲ ‘와인보우’ 성수점의 돌출사인이자 입체문자사인. 한 글자씩 따로 놓았지만 읽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호기심이 이는 순간 유심히 보고야 말게 되는 독특한 배열이 재미있다. 은은한 보라색을 사용해 와인의 특성을 담아낸 점도 흥미로운 간판.
▲ 손으로 흘려 쓴 듯 멋스러운 서체가 아름다운 ‘카페 버킨’. 넓게 비워진 입면에 알맞은 크기로 쓰인 상호가 아이덴티티에 방점을 찍었다. 가게가 거리 위 예비 손님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 보태니컬한 그래픽에 무늬가 화려한 벽걸이 장식품, 그사이에 놓인 채널사인은 아무리 불을 켜놔도 유일하게 빛나는 요소가 아니다. 다양한 인센스 스틱을 취급하는 ‘헤븐센스’의 간판과 익스테리어는 마치 정글 숲처럼 서로 뒤엉켜 따로 또 같이 분위기를 구성하는 ‘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