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은 지금도 사람들의 코끝을 자극한다. 요즘은 하루 새에도 새로운 것들이 넘쳐 난다지만, 낡은 추억을 자꾸 회상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구닥다리 그 시절, 우리의 연민과 감상을 다 받아주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잊혀진 줄 알았던 화공간판도 그렇다. 유일한 문화의 장이었던 극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화공간판이 어느날부터 다시 돌아와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글_이승미|사진_김수영, 드림시네마 제공
멀티플렉스의 아성에 묻혀버린 단관 극장 서울 미근동 드림시네마에 향수를 자극하는 옛 추억이 돌아왔다. 매표소 직원이 직접 좌석번호를 적어주는 단관 극장의 표를 받아본 적이 있는 이라면 아려한 그 시절 기억에 심장이 두근거릴 것이다. 그 옛날 충분히 즐길만한 문화가 없던 시절에 단관 극장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문화통로였다. 비록 불 꺼진 극장 안에서 퍼져 나오던 퀘퀘한 냄새와 필름이 자주 끊겨 화질이 좋지 않던 기억뿐이라도 현재는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1990년대 말, 단관 극장에서 멀티플렉스로 대세가 옮겨 가면서 극장과 함께 했던 것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극장을 지키던 기도 아저씨, 표를 끊어주던 아가씨도,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오징어를 팔던 어린 소년과 극장을 대표하는 ‘화공간판’ 도 사라졌다. 그 중 극장 간판은 영화를 보기 전에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사람들은 실물보다 멋지게 그려진 것을 좋아했고, 영화 속 주인공들도 몰래 찾아와 잘 그려 달라며 로비를 할 정도로 극장 간판의 인기는 절정을 달렸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영화 속 주인공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간판화가의 능력이며 인기도 였다. 하지만 그런 인기도 잠깐, 화공간판도 저렴하고 신속하게 제작할 수 있는 신기술간판에게 자릴 내주었다. 화공간판에서 실사출력물로 바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판화가에서 실사출력사업으로 방향을 바꾼 한 업체 사장은 대기업의 영향도 하나의 이유로 작용했다고 한다. 90년대 말 일부 대기업은 영상산업단이라는 부서를 만들어 영화사를 인수했으며 간판도 외국과 같이 실사출력물로 교체하기를 원했다. 또한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사람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인력이 부족했기에 빠른 시간 내에 멋진 간판을 만들어 내기에는 실사출력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시 꺼내보는 골동품으로 추억 재생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영영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화공간판이 다시 걸린다는 소식이었다. 드림시네마에서 ‘추억의 명화’ 재개봉 이벤트에 맞춰 그 시절 분위기를 내기 위해 화공간판을 건다는 것이다. 간판 화가도 사라지고 사람들도 점점 잊어가고 있는 지금, 머리 속 한 켠에 추억으로만 자리 잡을 줄 알았던 화공간판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실사출력에 밀려 골동품이 되어버린 화공간판이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되살리고, 경험이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드림시네마에 걸린 화공간판은 가로 24m , 세로 32m 사이즈로 여러 조각으로 작업하고 나중에 이어 붙이는 과정을 거쳤다. 작업 기간은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6일 정도 걸리며 비용도 실사출력보다 비싸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좋지 않던 화질을 감상하던 그 시절을 다시 느껴보기에는 화공간판만큼 좋은 것도 없다.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화공간판 간판이 사라지고 간판을 그렸던 화가들은 어떻게 됐을까? 간판 그리는 일만 하다 하루 아침에 직업이 사라졌을 때 그 난감함과 막막함은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화양극장 현 드림시네마 에서 미술부 부장을 맡았던 김영준씨는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직장을 잃게 될 줄은 몰랐다” 며 당시의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를 비롯한 극장간판 화가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벽화나 작품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는 화공간판 작업의 어려운 환경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화공간판만 있던 시절에는 극장 안에 작업실이 따로 있어 장소가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화공간판을 사용하는 극장이 없어서 작업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 없다. 예전에 작업할 때는 스틸 영화 속 장면 사진 과 포스터 3-4장을 받아서 그것을 자료로 삼아 작업을 했는데 요즘은 컴퓨터로 출력해 주다 보니 화질도 낮고, 선명하지 않아 명암표현을 하는데 애를 먹이기도 한다.” 하지만 화가의 개성을 표현하고, 강조하고 싶은 영화의 장면을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다는 점은 천편일률적으로 획일적인 실사출력 간판보다 경쟁력 있는 장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장인의 정신이 느껴지는 화공간판은 영화를 더 정감 있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기회에 추억을 되돌아 보며 사진과 실사에 과다 노출된 눈을 예술작품을 통해 편하게 해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SM
-캡션 1 드림시네마 입구에 설치되 있는 컴퓨터로 출력한 실사 포스터. 2 추억의 명화를 재개봉하고 있는 드림시네마의 개봉작 ‘미션’과 영웅본색’ 화공간판. 화공간판에서 인물의 생생함이 느껴진다. 3 드림시네마에서 다시 한 번 화공간판을 그리게 된 김영준 화가가 영웅본색을 그리고 있다. 4 완성되기 전 영웅본색을 스케치한 화공간판의 모습. 5, 6 조각으로 분리해 작업한 영웅본색 화공간판을 극장에 설치하고 있다. 주윤발의 얼굴을 보면 실사출력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7 화공간판을 그리는 데에 사용되는 페인트와 재료.
interview; 김영준 프리랜서 간판화가 10년 만에 돌아온 제자리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
현재 서울에 유일한 단관 극장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드림시네마 구 화양극장 는 주변지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될 예정이다. 드림시네마는 서울의 마지막 단관 극장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철거 전까지 ‘추억의 명화 재개봉’이라는 컨셉트로 추억을 선물하고자 옛 영화들을 재개봉하고 있다. 작년 말 ‘더티댄싱’을 시작으로 ‘고교얄개’와 ‘미션’을 상영하고 8월 8일에는 ‘영웅본색’을 재개봉했다. 또 추억의 영화 재개봉에 맞추어 최대한 그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화공간판을 사용했다. 이로써 추억 속으로 사라졌던 화공간판이 관객 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화공간판 제작은 화양극장에서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렸던 당시 김영준 부장이 맡았다. 그는 현재도 벽화나 초상화 등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만, 작년 말 드림시네마에서 ‘추억의 명화’ 재개봉 이벤트 첫 주자 ‘더티댄싱’ 화공간판을 그리면서 10년 만에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화공간판 작업은 보통 3-4명이 팀을 이뤄서 하는데 이번 작품도 그를 중심으로 함께 동고동락했던 파트너들 김기종, 유달현, 정동규 이 함께 했다. 특히나 이번에 작업한 영웅본색은 1, 2, 3편까지 다 맡아서 그릴 정도로 그와 인연이 깊다. 86년에 영웅본색이 개봉할 당시 화양극장에서 간판을 그렸는데 이번에 개봉 22년 만에 다시 그리게 된 것이다. “영웅본색은 그림도 멋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해서 작업한 것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다. 20년 전 화양극장에서 영웅본색을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극장에서 영웅본색을 그리다니 정말 대단한 인연” 이라며 회상에 잠겼다. 그는 미술과 영화를 좋아해 20대 초반에 간판화가를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 넘게 하고 있다고 하였다. 1980년대 말 홍콩영화 전성기에는 날 밤을 새며 간판을 그렸을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때론 “‘사랑과 영혼’ 같이 인기 많은 영화들이 6개월이나 계속 상영되어 일거리가 없을 때에는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운 적도 있다”며 예전 추억을 꺼내 놓았다. 한편 “현재 극장 간판을 그리는 것이 수입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돈 보다는 다시 극장 간판을 그릴 수 있게 됐다는 것과 추억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운이라 생각한다” 며 화공간판과 10년만의 재회를 무척 기뻐했다.